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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의 시대읽기] 책의 종교
문화저널21 기사원문보기

2018.04.26

이슬람은 기독교를 유대교와 이슬람과 함께 ‘책의 종교’라 부르면서 다른 종교들과 구별한다. 기독교는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가 기록된 책으로 믿고, 특히 개신교는 오직 성경만이 신앙과 생활의 유일무이한 규범이며 권위라고 인정하므로 ‘책의 종교’란 별명이 매우 잘 어울린다.


문자가 없다면 대부분의 정보는 입과 귀로 전달되고 기억 속에 보관될 수밖에 없다. 사람의 기억은 믿을 수 있을 만큼 확실하지 않으므로 중요한 정보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보관하고 전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하나님의 계시는 사람의 깨달음이나 경험과는 다르므로 기억만으로 보존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문자로 정착된 정보는 긴 시간 동안 정확하게 보관될 수 있고,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어서 전파 효과도 매우 크다.


만약 성경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처럼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될 수 없었을 것이고, 기독교는 세계적인 고등 종교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계시는 책의 형태로 우리에게 전수되었고, 권위를 가진 객관적인 기록이기에 흔들리지 않는 기본으로 기능하고 있다.


성경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있으나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있기에 그들에 대한 검토와 재검토를 할 수 있고, 그 옳음과 그름은 언젠가는 드러날 수 있다. 그 덕으로 신학과 전통은 더 정교하게 되고 발전될 수 있었다. 종교개혁 때 루터가 제시한 95개 조항도 그때 마침 발명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때문에 전 독일에 확산되었고, 그것은 종교개혁 성공에 크게 이바지했다. 문자와 책은 복음 전파와 기독교 문화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올바로 믿고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는 성경을 알아야 한다. 개신교는 처음부터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는 것을 허용했기에 책을 읽는 습관을 갖게 되었고, 책의 문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실제로 성경은 여러 나라에서 사람들의 문자 습득과 독서 문화 형성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중략)


문자가 있고 책이 읽히는 문화와 그렇지 못한 문화는 다를 수밖에 없다. 책이란 단순히 정보를 마구 던져 넣어 놓은 바구니가 아니다. 책은 수많은 정보 가운데서 중요하고 유용한 것들을 선택하고 체계적으로 분류하며 논리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책을 쓰기 위해서는 상당할 정도의 지적 능력과 논리적 사고가 필요하며, 세련되고 정교한 감수성조차 요구된다. 그런 성취는 독자들에게 전수되고 축적되며 그것을 바탕으로 한층 더 높은 차원의 작품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책을 읽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정보를 얻는 데 그치지 않는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사고를 훈련받고 창조적인 생각을 자극받으며 사물을 더 깊이 그리고 넓게 보는 능력을 얻는다. 그러므로 책을 쓰고 읽은 공동체는 문화가 발전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 개신교인의 87퍼센트가 선진국 혹은 중진국에 살고 있다. 경제가 발전해서 개신교인이 많아졌기보다는 개신교인들이 있었기에 경제가 발전했다고 설명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책의 종교는 사회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오늘날엔 교육이 일반화되어 모든 사회에 책이 있고 거의 모든 사람이 책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아직도 기독교인들의 독서량이 상대적으로 큰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그 비교우위가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책을 쓰고 출판하는 것이 돈이 되자 읽을 가치가 없는 책, 읽으면 오히려 해로운 책들까지 양산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는 좋은 책을 올바로 읽도록 힘써야 할 때가 되었다. 그저 그런 책 열 권을 읽기보다는 고전 한 권을 열 번 읽는 것이 더 유익하다. 고전이란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사람의 검증을 받은 것이므로 안심하고 읽을 수 있다. 긴 역사를 가진 기독교는 위대한 고전을 많이 생산해 놓았다. 아우구스티누스, 칼뱅(J. Calvin), 루터(M. Luther), 아켐피스(Thomas A Kempis), 번연(J. Bunyan), 카이퍼, 바빙크(H. Bavinck), 도여베르트(H. Dooyeweerd), 루이스(C. S. Lewis), 니버(R. Niebuhr), 본회퍼(D. Bonhoeffer), 쉐퍼(F. Schaeffer), 월터스톨프(N. Wolterstorff), 플랜팅가(A. Plantinga) 등 내로라하는 저자들이 쓴 깊이 있는 책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좋은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그대로 믿고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좋은 책도 마찬가지다. 읽고 이해했다면 그것이 신앙과 인격 성숙에 도움이 되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져야 가치가 있다.